백선엽 장군 별세
백선엽 장군이 지난 10일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영결식은 15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열렸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도 애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미국 국무부 모간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백선엽 장군 별세와 관련해 한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이서 백선엽 장군이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서 그가 한국전쟁에서 조국에 한 봉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한 싸움의 상징"이라며 "미국과 한국은 오늘날에도 이런 가치를 계속 지키고 있다고"도 전했다.
백선엽 장군은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에서 출생한
백선엽 장군은 1941년 1945년까지 만주에서 친일토벌부대 '간도 특설대'에서 장교로 근무한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을 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군에 입대한 백선엽 장군은 육군본부 정보국장을 거쳐 1 사단장에 부임합니다. 6.25 전쟁이 발발 하자 백선엽 장군은 육군 2 연대 1사단을 지휘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약 1000일 이상 최전선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며 한국군 최고의 야전 사령관 이라는 명성을 얻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대구 북방 다부동에서 방어선을 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8월 공세를 펼치며 내려왔습니다. 다부동이 뚫리면 대구는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대구가 함락되면 최소한의 공간 확보 요인 데이비드슨 선이 무너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다부동 전투는 부산을 사수하려는 국군과 미군의 운명을 건 결전이었다. 그러던 중 국군 11연대 1대대가 고지를 탈취당해 후퇴한다는 보고가 올라간다. 이에 미군은 한국군을 질책한다. 싸울 의지가 있냐며 말이다.
이때 백선엽 장군의 곧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당시 장병들은 계속된 격전에 지친 데다 보급이 끊겨 이틀째 물 한 모금 못 마시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처참한 상황속 부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선두에 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이후 388고지를 재탈환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백선엽 장군은 한국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두 차례 태극 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백선엽 장군은 1960년 5워 31일 퇴역을 한 후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외교관으로도 활동도 합니다. 1969년 10월에는 교통부 장관이 되어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지휘 감독하기도 합니다.
아이젠 하워, 부시 태통령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백선엽 장군을 백악관의 귀빈으로 초대받기도 합니다. 또한 역대 주한 미국 사령관이 한국에 취임하면 백선엽 장군에게 전입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몸을 다친 상이 군인들의 후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상이자 원호처'라는 부서를 만듭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지금의 국가 보훈처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친구, 가족, 직장 동료들이랑 대화를 할 때 "산전수전"라는 말을 쓰일 때가 있다. 백선엽 장군은 100년을 사셨다. 나는 궁금하다.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동안 멀리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동산 3법 통과 (1) | 2020.07.30 |
---|---|
이재명 관련주 와 이낙연 관련주 전망 (1) | 2020.07.16 |
박원순 아내 강난희 여사 나이 프로필 학력 성형 (5) | 2020.07.12 |
댓글